헛소리에 대한 변명

너의 이름.에 대한 국가주의에 운운한 것에 대해서

1.의견 감사합니다. 비판은 잘 받았습니다만 내가 내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뽐내고 파오후 쿰척충들 다 날려버리갓어 라는 일념아래에서 쓴 포스팅은 아닙니다. 그럴거면 굳이 이글루스에 올릴 필요도 없었죠

-아이누족의 현실이나 다른 영화에서 본 경험도 있었고 내가 염세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런 식의 논지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 좋아하시는 분들과 의견이 다를뿐이고 이 작품 좋아하는 사람들을 욕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습니다. 난 프폭도 아닌 겨울왕국빠였는데 자꾸 겨울왕국같은 코흘리개 애니가 얻어걸ㄹ려서 천만찍었다고 할때는 찐들찐들 거린적 있었습니다.

-도적적, 지적 자위질이냐? 라는 지적. 불쾌하고 억측입니다. 엄격진지근엄하게 따지면 모든 서브컬처 소비행위자체가 비도덕 행위라서 하면 안됩니다. 롤러코스터 타이쿤에서 롤러코스터에 손님태우고 허공으로 발진하는 행위, 일부러 사람집어서 물에 빠뜨리는 거 언제 문제가 되긴 했습니까? 문명5에서 도시국가에서 정찰병으로 일꾼 갈취하고 병력전진배치해서 자금을 뜯어먹는 행위하는 플레이어는 제국주의자라고 비난하지 않습니다. 더 재미있게 더 효율적으로 게임을 잘하기 위한 행동에 지나지 않습니다.

또한 오타쿠들 덕통사고당하면 굿즈를 사거나 n회자 관람강행등 여러 행위를 합니다. 그러다가 2차창작도 하게되고 그러다가 18금 동인지나 노출도 높은 이미지를 갈구하지 않습니까? 가끔식 어떤 캐릭터를 괴롭히는 2차창작물도 유행하기도 했죠.  최근에는 돈받고 팬아트도 그려줍니다. 약간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용인됩니다. 그런 행위 모두가 작품을 즐기는 현세대들의 방식입니다. - 히토미꺼라.

어차피 인간은 실수하고 잘못하는 생물이고 나도 인간입니다. 까놓고 말해서 칸코레 좀 하면 어떻습니까? 온라인 매국한다고 국격이 떨어집니까? 아니 재밌으면 할수도 있고 즐길수도 있고 오히려 나라망신은 작은 박통이랑 수시리가 읍읍! 다 하고 다 말아처먹는데! 살다보면 얀데레 캐릭터에 빠져서 덕질할수도 있는거지 그거가지고 넌 왜 취향이 괴상하냐? 제가 언제 이런식으로 접근했습니까? 

2. 본론으로 돌아가서 미야미즈 신사 파트나, 신지등산 파트를 볼때마다 저는 부러움과 동시에 안타까움, 질투를 느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저럴수가 있구나, 저런 말을 할 수가 있구나. 지진도 있었고, 원폭맞은적도 있지만 선사,역사 통틀어 외침을 받은적이 적으니까 저런 전통이나 무속신앙이 보존이 잘되었고 어떻게든 이어져나가구나 우리네는 맨날 불타거나 탄압받아서 원류를 찾기도 힘들고 찾아다한들 이미 개발독재,여타 종교와 결합되서 변질되버렸기에 말이죠. 그리고 일본이라는 나라는 그 원인을 제공한 국가이기도 하고요. 어쨌든 제가 뭘 몰랐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3. 미츠하의 할머니, 미야미즈 히토하의 발언은 결국 너무 낙관적이고 이용당하기 쉬운 포지션에 있지 않냐는 개인적 생각입니다. 물론 미야미즈가문도 대화재이후에 그 의미를 다시 되찾으려는 노력을 햇었겠지만요, 빈강정이 되고 신의 존재조차 어렴풋이 남아있어도 형식만 어떻게든 지켜나가면 잘되거라는걸 좀 견디기 힘듭니다. 막연한 낙천주의 같아서요 ㅉ 개소리라고 하죠

4.무스비에 대해선 의견이 갈리는데 , 무스비란 신과 인간의 시공을 넘어선 유대라고 보는데요 그리고 이 위대한 유대속에서 사람들끼리도 시간을 넘어서 하나가 될수 있다는게 작중의 메세지아닙니까? 이 것도 개인을 하나로 묶어버리는 통합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거기엔 프로파간더적 요소도 없다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물론 맞습니다. 애초에 작품내에선 개인을 위험하는 존재는 타자가 아니라 세계 그 자체죠. 허나 동시에 개인을 구원하는 것도 세계, 무스비입니다. 

무스비가 아니었다면 타키와 미츠하의 사랑은? 이토모리 주민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 작품내에선 무스비가 알파이자 오메가입니다. 자기 가족이 부끄러운 미츠하의 운명을 뒤바꿔놓은것은 무스비로 인한 이어짐떄문이고. 물론 주인공들을 노력하긴 합니다만 주인공이 모험을 통해 무스비를 실현하는것도 아니고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탑승하는 식으로 전개됩니다. 제가 보기엔 위대한 통합론 아래에 하나되는 우리라는 그림이 그려지긴해요.

5-무스비를 너무 과대평가한걸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 특히 10대라면 무스비를 그냥 페북,트위터같은 도구로만 인식할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짤이 돌아다니는게 증거입니다. 또한 할머니가 어린아이에게 들려주는 구전동화,설화같은 것에 불과한지도 모릅니다. 이것 도 무스비 저것도 무스비 가지고 놀기도 좋고요, 저는 이런 무스비놀이가 가능하다는 점도 이 작품의 장점이라고 봅니다.

6. 아무튼 이것도 몰아가기일수도 있겠네요. 억측이고 꼬리잡기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을 반박할만한 증거를 찾아야만 합니다. 가장 중요한건 타키와 미츠하의 사랑이 그들간의 의지로 이뤄낸 산물이라는걸요. 개인과 개인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이어진다면 나의 주장 모두 100프로 개소리인거죠. 그런데 작중내에서 너무나 많은 비약과 생략때문에 찾기가 힘듭니다. 무스비에 상관없이 타키는 타키라서 미츠하는 미츠하라서 사랑했다라는 증거, 무스비와는 무관하게 사랑한다는 정황.

계기는 무스비든 미야미즈의 유전병이든 어쨌든 그 사람이 아니면 안되는 이유말입니다. 뭐 관객입장에서는 두 주인공의 매력을 잘 알수 있지만 정작 두 주인공은 서로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뭔지도 모르겠고 단지 기시감떄문에 만나려하는건지 애정인지 뭔지 모르겠단 이야기입니다. 적어도 혜성충돌 직전 지하철에서의 만남씬에서 타키는 미츠하한테 뽀뽀라도 했어야 했는데 그것도 아니에요. 이 플라토닉 러브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증거가 너무 부족합니다. 

오히려 무스비와 무관한 사랑은 텟시X사야카 커플이 있지않나? 일단 주인공아닌 조연커플이고 뭐 외전을 찾아보면 원래 테시가와라는 미츠하를 좋아했는데 자연스럽게 사야카랑 더 가까워졌다라는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또 결국 이 커플도 타키와 미츠하간의 무스비때문에 살아남았다는 점에선..;

7. 그렇다고 타키와 미츠하가 애정떄문에 심각한 고통을 겪는가요? 딜레마를 겪는가요? 월트와 데즈카 선생이 하나의 표준, 클래식이 된건 세계와 투쟁하고 갈등하는 개인의 고뇌,고통을 그렸기 때문입니다. 신데렐라는 수동적 여성이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도덕을 묵묵히 실천하는 인물이라서 한번 죽게되는것이고요. 아톰 역시 미래사회의 수호자인 동시에 외부자였고 그 태생적 모순을 극복하려 노력하고 그 와중에 고통을 받습니다. - 그런 이유로 주토피아가 신자유주의 선전물이 아닌겁니다.

미야미즈 가문내에서의 갈등을 해결한 건 결국 무스비때문이고 이것도 무스비도 저것도 무스비때문에 구원받았고... 적어도 미츠하는 혜성충돌때문에 재정적으로 힘들다는 연출이나 암시라도 있었다면 저의 생각이 틀렸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없었죠. 아니면 주인공들 중 한명의 신체에 상흔이라도 남았다던가 하는식의 연출도 있겠죠. 감독이 꼭 어둡거나 복잡한 이야기가 전개될때는 그런 분위기를 몽땅 거세해버리는 연출도 아쉽습니다.

-타키와 미츠하가 휴대폰, 종이에도 글씨를 남기지만 자신들의 몸에 이름을 적는게 행위에도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일부러 칼로 상처를 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게 아닌가? 그런데 그것도 아니데요. 

8. 근거없는 희망이라도 가지는것도 좋을때가 있고 희망을 갖고 긍정적으로 사는 태도 또한 소중한 마음가짐이요. 또한 무스비라는것도 옛날사람들의 입장에서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보다는 우리가 신과 이어져있다는 편이 더 행복하게 하루를 살아갈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하겠죠. 그렇지만 현재는 기술자들이 인공지능 특이점 돌파를 위해서 연구하고 있는 21세기입니다.

근데 여기저기에 무스비가 다해처먹는 이 작품의 세계관에서 개인의 생각이나 의지는 왜 가져야하고 왜 중요한건지요? 낭만도 좋지만 이번 작품에서 창작자는 그 정도를 넘어서서 개인의 사고,행동자체는 무의미하다는 선까지 왔습니다. 물론 작품자체는 너무나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젊은 세대에겐 시기적절한 위안입니다. 허나 명백히 작품의식 자체는 국가주의의 덫에 빠자기 쉬운 성질이에요. 게다가 [너의 이름은]은 일본에서 에반게리온과 비교되는 초흥행작이구요.


마지막으로 다시 강조하자면, 나는 [너의 이름은]이 이 맛은 우익의 맛이구나 신카이! 이런식으로 낙인,도장을 찍는게 아닙니다. 여러모로 우경화 흐름안에 있고 그런 요소가 창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이용당하기 쉽지 않냐? 라는 의견을 내는겁니다.  꼬투리 잡고 뺵거리는거 아님 아무튼 아님.

지적 비판 잘 받았고, 향후 밸리생태를 위해서 관련 포스팅 안하겠습니다.


[너의 이름은]비판 - 낭만 아래에 숨어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고 있고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너의 이름은]은 장점이 있고 일본 1500만이나 관람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덕에 대한 리뷰는 너무 많으니 저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1. 멜로드라마에 사랑과 드라마가 없다.

 

여전히 신카이의 장점이자 단점. 인물 간의 갈등, 즉 드라마가 약합니다. 왠만한 영상매체속에서 인물들은 부딪히고 갈등하기 마련인데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의 인물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죠. 주역들 간의 공감대가 생길 시간도 사건도 없었습니다. 영혼의 뒤바뀜이 그런 계기가 되는 사건이 된다고 한다면 몇번의 영혼교환 사이에 주역들간에서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면서 단지 몇번의 영혼이 뒤바뀌고 나니까 서로 사랑하게 되버렸다? 이건 명백하게 인물설정이 뭉게진겁니다. 이 작품의 배경작화처럼 말이죠.

 

그 증거로 타키안의 미츠하는 오쿠데라와 교류하고 언제나 욕망하는 도쿄생활을 직접 누립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타키의 생활이 아니고 그렇다고 도쿄학생인 타키를 동경하는것도 아닌 타키 그 자체에 연정을 품게 되는겁니까? 그리고 타키가 욕망하는 인물은 오쿠데라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영혼교환 후의 시골생활에 너무나도 잘 적응해버립니다. 이 부분 역시 창작자의 사기입니다. 이토모리와 도쿄는 열차타고 몇시간이면 도달할수가 있는데 왜 이토모리에 머무르고 마는 것입니까?


 

이런 설정붕괴가 있어도 관객들은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거라 믿어버리는 사태는 왜 벌어지는걸까요? [너의 이름은] 속에서 타키와 미츠하가 대면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5분 정도입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타키와 미츠하는 항상 엇갈리고 서로 등을 맞댑니다. 시선이 마주치는 씬 자체가 적습니다. 멜로장르임에도 불구하고요! 신카이의 연출은 관객의 마음속에 기대감을 만들어냅니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이라면 대번 눈치채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타키와 미츠하는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런 모습은 둘이 만나야 한다는 이유에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금지된 것에 대해 미련을 남기고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객은 남녀간의 사랑을 기대하고 이미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문법적 이유입니다. 현실 속의 총과 영상 속의 총은 다분히 다른 장치입니다. 현실 속의 총기는 그냥 총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관찰하고 누구의 물건인가? 어떤 용도인가에 대해서 유추를 하게 되죠. 하지만 스크린 속의 총기를 목격하면 우리는 이 총기로 인한 사건을 기대하게 됩니다 - 이 총이 격발한다면 '체호프의 총'이 되고 불발된 채로 그저 존재한다면 '맥거핀'이 되죠. 이런 이유로 관객은 여러차례 멀리 떨어져있는 주인공들의 처지를 보면서 저절로 그 남녀가 만나게 되는 순간을 갈망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리한 연출이라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물타기에 불과하며 여전히 각본의 재능이 없음을 증명하고 맙니다. 타키와 미츠하간의 영혼교환이 일어났을때는 신카이는 그 시간대를 뮤직비디오로 날려버리는데, 신카이 마코토는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라며 어물쩡 넘어갑니다. 하지만 창작자로서는 직무유기입니다. 그래서 멜로에 멜로가 없는것입니다. 인간사이의 공감이 없다면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기본이란 감정과 기억의 공유입니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은 낭만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멋대로 그려버리는바람에 감정이 최고조에 치닫는 결말부분에서는 관객들은 감정선을 찾다가 놓쳐버리고 영상미를 음미하는걸로 대신합니다. 이 점 에선 한국 드라마작가들이 훨씬 뛰어나죠.




2. 낭만 낭만 낭만

신카이 마코토는 이번 작품에서 오타쿠의 리얼리즘대신에 운명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편이 더 멋있고 낭만적이기 때문입니다. 구질구질하게 밀고당기는 전투같은 사랑이나 나만 앓고마는 짝사랑보단 단 한번의 만남으로도 운명임을 알수 있는 영화같은 사랑. 운명의 붉은 실때문에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결국엔 이루어지는 사랑이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 사랑입니다.

 

그 맥락에서 무스비라는 운명론이 강조됩니다. 헌데 신카이 감독은 무스비가 중요하지 않다고 발언을 하였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명백하게 동일본 대지진과 대재앙의 상징인 혜성의 충돌장면마저 낭만적으로 그려낼수 있는것은 어차피 운명론에 의해 이토모리는 구원받기 때문이죠.

 

이 작품때문에 희망을 얻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작품속의 운명론적 세계관은 낭만적 분위기를 극대화되는데 기계적으로 소비되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츠하와 미츠하아버지간의 가족갈등은 과감하게 생략된 걸 보면 알수 있듯이 낭만을 헤치는 요소는 과감하게 지워집니다. 인간관계가 과감하게 배제되는것에서 아직 세카이계의 그림자를 느낄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카타와레도키. , 황혼의 시간이라는 개념 역시 낭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찰나의 시간속의 나와 너. 2사람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 시간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은밀한 욕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욕망은 현실에선 은폐되기마련이며 매체에서도 퇴폐적으로 연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이런 욕망을 감추고 그 상황자체를 낭만적으로 그리는데에 도가 튼 인물이죠. 그의 전작인 언어의 정원이 그랬지 않았던가요?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내면의 애정.

 

뒤틀린 애정관이라고 할순 있지만,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게 일상인 시대에서 그런 욕망마저 싸잡아서 욕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3. 타인이 없다.

 

그렇다면 그 낭만은 누구의 것입니까? 감독의 시선은 철저히 도시, 자기중심적입니다. [너의 이름은]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다다 식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 이야기는 남자의 이야기다. 도시인의 이야기와 고통이 있죠.

 

타키가 지속적으로 겪는 망각은 도시인의 고통을 뜻합니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끊임없이 배워야 생존이 가능한 도시인들에게 망각은 생존의 필수과정입니다. 잊은 만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서 경쟁하고 또 잊어버려야 하죠. 미츠하 역시 타키에 대한 기억을 잊고말지만 미츠하의 망각은 미츠하의 극중퇴장으로 인해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변인이 어떻게 그려졌는가? 미야미즈 신사의 의식은 한 폭의 동양화입니다 어두운 밤속 홀로 빛나는 무녀의 춤사위. 그리고 무녀들이 입으로 빚는 신을 위한 술. 또한 도시주변인의 고민이라고 해봐야 낡아 빠진 시골을 벗어나 모던 라이프를 만끽하고 싶다는 사랑스런 고민에 불과합니다. 앞의 단락에서 언급한 혜성충돌. 이 연출 또한 작가나 혹은 작가의 친족이 대지진의 피해자였다면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그려질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참사가 과연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습니까? 인간이 자초한 참사도 분명 있었습니다.


[너의 이름은]의 결말부에서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인해 현실은 개변되어서 이토모리는 파괴되지만 주민들 다수가 생환합니다 결과만 놓고본다면 상처는 치유된겁니다. 그런데 지금, 2회차의 이토모리 주민들은 원래라면 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기억 할수가 없어서 역사와 기억과 단절되버린거죠. 상처는 치유되면 흉터를 남깁니다. 그런데 상처마저 없다면 그것이 참된 치유?라고 할수 있을까요? 신카이가 그리는 치유란 재와 먼지구덩이속에서 절망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아니라 대안적 현실을 만들어버리고 거기로 도피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죠. 누구나 꿈꾸는 상상인데 나쁘게 말하면 유치한겁니다. 뭐 어떻게든 살면 좋다면야 달리 할 말이 없군요.

 

4 국가주의

 

그래서 나는 [너의 이름은]도 일본우경화의 흐름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무너져서 그 의미는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전통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미츠하의 할머니.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명백한 정복국가이며 먼 옛날에 성립이후로 2차대전까지 점진적으로 팽창된 역사를 은폐하면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죠. 설사 미야미즈 신사가 지방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하더라도 국가신토에 의해서 류쿠나 아이누족 문화, 지방신앙이 상당부분 파괴된 21세기에서 전통문화를 지켜한다?

 

또한 '나는 너, 너는 나'무스비라고 하는 관념.그 것 또한 무스비. 저 것 또한 무스비. 전통과 유대와 일체감이란 국가주의진영에서 가장 중요하시는 덕목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인가? 언제부터 우리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나? 라는 의문에 작가, 신카이 감독은 대답할 생각도 없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낭만적이지 못하니까요.

 

어쨌든 [너의 이름은]이 초흥행작이 된 건 이런 요소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물론 온고지신의 정신은 어느때나 잊어서 안되고 각나라의 전통문화는 소중한 유산이지만 이렇게까지 GOback 해야 할까?

 

 

이마이시 감독의 작품인 [킬라킬]에서 '옷은 옷, 인간은 인간'선언과 비교하면 경악할 정도의 의식적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에반게리온 Q에서 안노 히데아키는 적어도 솔직했습니다. 뭐가 뭐인지도 모르겠지만 희망을 잃지말자는 안노의 고백에 비해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에서 희망안에서 오래된 가치를 몰래 수면 위로 부상시키려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함대 콜렉션같은 세탁된 우익물이라고도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신카이 감독은 우경화의 흐름에 휩쓸렸지,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는 '사회'라는 개념을 연출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없는데 유대와 일체감이 뭔 소용인가요?

 

마무리

[너의 이름은]이란 작품은 그래서 나쁜 애니메일까? 성우들의 만담쇼에 불과한 [낙원추방]같은 애니메보다는 더 활기차고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체계의 영상문법, 오타쿠적 리얼리즘에 벗어나서 좀 더 대중적이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계층의 감성에만 호소했던 작품들보단 [너의 이름은]이 애니메이션라는 매체 본연의 미덕에 충실했다는게 개인적 평가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오타쿠문화가 끝장나거나 새로운 전환점이 될꺼라는 것에는 일본평론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라서 가능한 체계 밖의 산물입니다. 동시에 협업이 등한시되고 장인 한명이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20세기 일본식 시스템아래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죠. 업계의 표준이 되기에는 너무 특이한 작품인겁니다. 한마디로 따라하기가 힘든겁니다. 애초에 신카이 마코토라는 창작자 자체가 상업적 성공에 집착했다면 [너의 이름은] 같은 수작을 만들지 못했을겁니다.

 

만약 일본애니메가 달라진다고 한다면, 신카이 마코토보단 아베노믹스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애니메 주류는 사회적인 사고를 회피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페미니스트란 작자들이 깽판치는 한국상황이 훨씬 더 건강한게 아닐런지요.



-신카이가 말하는 무스비와 LCL용액은 뭐가 다른걸까?

-나는 이작품떄문에 신카이는 인류보완계획 찬성론자라고 확신한다


 


사드 철회 한다고 한한령(限韓令)이 철회되나?

3줄요약
1.한류는 중화사상과 대립한다
2.왜? 중국은 독재국가이고 한류는 민주주의에 기반한 문화라서
3.중국은 그런 한류를 용납할수가 없다. 왜? 하나의 중국이 깨지고 지배체제에 문제가 생길수 있기 때문이다

더민주랑 친중주의자들한테 한마디 하고 싶은데 사드철회한다고 한류가 다시 재개될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물론 사드배치, 한국만 욕먹고 돈은 미일이 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드철회해주면 아이고 한국 참 잘했어요! 하면서 다시 이뻐해줍니까?


친중외교론 펼치시는 사람들보면 항상 경제적 이유를 대는데 말이죠. 돈문제 이전에 이념, 역사 문화적으로 한국과 중국은 대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동북공정도 있었죠? 그건 넘어가고 이제 중국은 돈좀 많이 벌고 경제대국되었으니까 우주도 진출하고 문화적으로도 경쟁력 확보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미 체육계부터 한국과 중국은 경쟁관계였습니다. 

물론 올림픽순위에서 잽도 안되지만 한국체육계는 세계적인 스포츠분야에서 글로벌스타를 배출해냈습니다. 중국이 비교적 비인기종목인 체조나 탁구같은거에서 성과를 낼때 말이죠. 김연아 그리고 박지성. MLB에 진출한 kbo 야구인들. 골프는 또 어떻습니까? 한국은 돈 쫌되는 종목에서 이미 무시할 수 없는 경쟁력이 입증되었습니다. 그동안 중국 체육계? 뭐 글로벌 스타를 배출해냈습니까? 야오밍빼고는요? 그 야오밍조차 전성기를 달려야 했는데 부상불운으로 은퇴했습니다. 중국축구 황사머니로 엄청나게 투자해대고 있는데 중국축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동팡저우빼고는 누가 바로 생각이 납니까? 근데 역대 넘버1 중국축구인은 순지하이라고 따로 있는데 그리 유명한 인물도 아니고 만수르 이전의 맨시티에 뛰어서 말이죠.

또한 e-스포츠조차도 한국에 발려서 2등, 3등으로 대회를 마감한적도 있습니다. 워크3는 우주인 장재호가 있었습니다. 물론 워3는 중국강세인건 분명합니다. 그런데 이미 고전게임이라서 별 영향력이 없었죠. 리그 오브 레전드 LOL을 보십시오 2015년 월드 챔피언십. 그 당시 코리안 엑소더스라고 무수한 한국의 프로게이머가 황사머니때문에 중국으로 가게되어서 이제 롤의 1등국가는 바로 중국이라고 엄청 중레발 떨었는데 결과는 한국리그의 2팀끼리 그랜드 파이널을 치뤘습니다. 중국리그 LPL은 국제적 망신을 당했습니다. 사실 대국의 자존심을 알게모르게 긁어대는 국가는 미국도 일본도 러시아도 아닌 쬐그만 남한이라는 국가였습니다.

문화적으로 보면 또 어떻습니까? 이미 90년대부터 kpop은 활발히 진출해서 꽤 많은 돈을 벌고 있었고, 한국드라마는 하나의 문화현상까지 불러일으킬정도입니다. 한국예능포맷도 많이 수출했고 그냥 표절당하기도 했습니다. 문화인재들 또한 중국으로 많이 건너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원히트원더였지만 싸이의강남스타일은 유투브를 지배했고 세계를 지배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번 트와이스 쯔위사태를 보면 알수 있습니다. 본디 한류란 민주주의사상을 기반으로 한것입니다. 자기나라 국민이 자기나라 국기를 흔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상황인데 하나의 중국원칙으로 보자면 그것은 용납될수가 없는 사건입니다. 양안관계의 특수성떄문에 일개 아이돌이 동북아정세의 상징이 되버린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이걸 중국지도부가 그냥 지나쳤을까요?

또한 이번 16년 겨울의 뜨거웠던 촛불항쟁. 이 민주주의 회복운동은 전세계에서 보도되는 상황이고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망가지고나서야 그 민주주의 가치가 진정적으로 발휘되는 이 요지경 상황. 이 또한 중국같은 일당독재국가가 보기엔 너무나 큰 위협이고 반동입니다. 중국같은 나라에 저항권이 보장됩니까? 집회의 자유? 아니 철거민들이 투쟁한다고 시진핑 사진을 자기집에 도배하는게 중국의 현실입니다.

프랑스 혁명때를 생각하면 대번 알수가 있습니다. 프랑스 혁명사상은 유럽왕가를 뒤흔들었고 한동안 계몽주의자들은 엄청난 박해와 탄압을 받았죠. 빈 체제라고 지들딴에는 구 지배질서 회복을 위한 국제체제까지 만들었습니다. 이런 역사적 사실로 미뤄볼때 한류탄압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상황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 정치지배원칙의 차이때문에! 그네들은 일당독재고 우리는 다당제 민주공화정이니까! 남한은 미국과 동맹이고, 북한은 중국의 동맹이라서가 아니란 말입니다.

결국 한류와 중화사상은 싸울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공존하고 싶어하죠 근데 중국은 우리를 부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네들 방바닥이 따스워지고 편안하게 잘 수 있으니까요 뭐 한중관계 복원하는 노력까지 하지말라고는 요구안합니다. 근데 외교때문에 우리의 미덕까지 부정당하는 사태까지는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랍니다. 이참에 문화수출전략도 더 다각화해야 합니다


페미들의 소박한 목표와 믿음

나의 편협한 시각으로 보면 페미들은 미러링이나 sns를 통해 한남들이 자신들의 과오를 반성할수 있다고 믿는것 같다.

소추소심,씹치, 재기해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고 엄청난 과격성은 그네들의 투쟁은 투정이고 정치,사회적 운동의 성격이 강하게 띄고 있는게 아니라는 반증이다. 메갈리아 촉발자체가 우연의 우연에 거듭해서 생겼고, 그 사람들의 생각자체도 1차적으로 거창한 여성상위 사회 건설이 아닌, 그냥 자기들도 편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의 발로였을뿐이었다.

정말이지 유치하고 낙관적이다라는 감상이다. 단순히 모여서 한목소리를 내면 될줄 알았겠지... 나도 작년만해도 메갈리아 설립은 한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거라고 봤다. 그런데 한국독립운동단체처럼 1년도 안되서 갈갈이 찢겨지고 발전은 커녕 퇴행한것에 대해선 안타까운 따름이다.

짹쨱이들은 한남고나리 오지네요 라고 할거 같은데, 여성들의 열망은 어느 선에서 정체되었다고 생각한다. 메갈 워마드 레디즘 주장 모두 소박한 요구, 투정에 지나지 않는다. 무릇 사회운동이라함은 결국 권력, 폭력적 성격을 띄게 마련이고 단체끼리 관계설정때문에 그 초심이 - 슬프지만 변질될수 밖에 없는것인데

그렇다고 여성의 권리를 위해 의무를 명확히 정립한다는 논의도 없었고 - 예를 들어 국방세와 군가산점 폐지, 그렇다고 폭력투쟁으로 변질했나? 악플? 패륜적 게시물작성? 고소? 미국민권운동역사와 한국현대사를 살펴봐도 이런 온건적인 투쟁을 투쟁이라고 말할수가 있나? 난 워마드가 진짜로 게이 아웃팅할거라고 믿고있었건만..

그렇다고 진보진영이 여성운동을 잘 도와주고 있는것도 아니고, 계층갈등 세대갈등 다무시하고 남/여를 흑백으로 제단하는 논리를 보면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꼴페들 지지하는거야 아무 생각 안드는데

페미니즘은 여성만 신경쓰면된다는 주장도 결국 1차적발상이다. 다양성,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그런 생각은 도태될수밖에 없고, 그래서 그 여성의 주체성은 여성만 잘하면 세울수 있는건가? 이것도 권력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한 증거일뿐이다. 정말 그 주장이 맞다면 박정희와 처칠, 비스마르크같은 보수권력들이 앞다투어 사회복지제도를 도입했나? 결국 지금의 넷페미니즘은 아무것도 가진것도 없고 아는 것도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입증한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한국사회의 지리멸렬한 근대성?만 다시 증명하고 말았다는 그런 생각만 든다. 카리스마적 인물이 아니면 도저히 뭉칠수가 없는.. 그런 성질말이에요. 아니면 그 익명성이라는 수단을 도저히 버릴수가 없었던걸까

어쨌든 그 낙관주의를 본받고 싶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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