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크리에 대한 너무나 주관적이고 불충분한 해설 1편



1999 7 하늘로부터 공포의 대왕이  것이다.

앙골모아 대왕을 소생하게 하기 위해서



그러니까 프리크리 이야기를 하려면 반드시 에반게리온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왜냐하면 프리크리의 설정이나 인간관계가 에반게리온을 생각나게 할 정도 비슷하고가이낙스가 신세기 에반게리온 이후 5년만에 만드는 오리지널 애니메였기 때문입니다. – 중간에 그와 그녀의 사정은 만화원작이고 안노 감독 작품이니 패스.

 

우선 두 작품간에 교집합적인 요소들을 살펴봅시다.



- 어린아이 VS 어른 (다른 작품에서도 많이 보이지만요)


- 청소년들의 절망을 다루고 있다.


- 여러 번 물고 봐야하는 난해함.

- 거대메카닉물의 특징
- 괴물이나 주역메카는 죄다 생물체적인 분위기의 물건.
- 특정한 도시에계속적으로 괴물이 출현. 이에 대항하는 비밀조직이 존재한다.(울트라맨)

- 소년 주인공과 그 주변의 3명의 여성. 그 중 한명은 보호자 혹은 조언자 포지션.  

  히로인들은 소년에게 상처를 준다.


- 주인공은 어머니가 없다. 또한 주인공은 아버지랑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다. 

- 실사영상이 사용.

- 2개의 작품의 캐릭터 디자인은 사다모토 요시유키



그리고 기본플롯을 비교해봤습니다.

(http://www.ruliweb.com/ruliboard/read.htm?num=31663&table=img_ani_new&main=ani에서 발췌)


- 사춘기 소년 타군[[신지]]에 일상에 갑작스럽게 변화를 주게된 베스파녀 [[에반게리온 같은 존재]] 그리고 주인공 머릿속이나 주변인들에서 기생하여 튀어나오는 존재들 [[에반게리온의 사도와 같은 존재들]] 출현. 그로 인한 일상의 변화 그리고 소년의 심적 성장.


별로 중요하지 않는 부분들도 있습니다만, 많은 부분들이 일치합니다. 자! 여기서 놀라셔야 합니다! 네! 네...? 헛..참. 


그러니까


이미 신극장판 이전에 TVA 에반게리온은 속편 혹은 리메이크 작업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



헛소리 같죠? 제 생각도 이건 헛소리 같긴 합니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나서 끼워 맞추다보니 뭔가 아귀가 맞는 다는 얘기죠. - 간혹 안 맞는 조각도 있지만 그지만 FLCL이란 작품 자체가 헛소리가 가득한 작품이니 뭐 상관 없겠죠?


본론으로 돌아갑니다.


에반게리온 원작에 대해선 수 많은 해석이 존재하지만, 일단 세기말에 대한 공포와 시대분위기에서 오는 절망이 가득한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는 점에서는 많은 오덕들이 동의 합니다.


일단 1995년부터 96년까지 원작이 방영되었고 97년까지 극장판이 계속해서 나왔습니다. 시대적으로 보면 불운한 시기입니다. 세계는 세기말에 대한 공포로 들썩였습니다. Y2K 밀레니엄 버그니, 앙골모아 , 심판의 날,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 마야인의 예언 또 뭐시기 뭐시기의 예언.


또한 일본은 한창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기나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상황이었고 동아시아에서 터진 금융위기로 상황은 한층 더 암울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극복했냐고 하면? 뭐... 원전이 터졌잖습니까? 거긴 안되는 동네입니다.


가이낙스 내부 스탭들의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은 시절입니다. 에반게리온 대박이 터지기 전 까진 가이낙스가 워낙 어려운 회사라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자, 그러면 여러분은 이 시점에서 가이낙스의 스탭이 되는 겁니다. 어떤 작품을 만들까요? 만들고 싶을까요? 물론 이런 시대적 상황에 반대하는 방향으로 엄청 밝은 분위기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무의식적 행위가 반영되기 마련이고 만약 에반게리온이 밝은 분위기의 작품이라면 공전의 히트를 칠 수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보세요. 얼마나 어둠에 다크한 작품입니까? - 물론 2 작품다 희망적인 요소는 있습니다. 허나 원작 에반게리온은 결국 현시창적인 결말로 끝납니다.


***


하지만 여러분은 저한테 따집니다. 그게 말이 되냐고? 그리고 왜 엉뚱하게 FLCL 이야기를 안하고 에바부터 이야기하냐고?  네! 그러니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조선말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그럼 시간을 빨리 감아서 2000년도로 가야 합니다. 


근데 호무호무의 버클러 타고 가야 합니까? 아니면 도라에몽한테 부탁해야 합니까?


***


2000년 


지구에는 컴퓨터가 미쳐서 사람을 잡아먹는 일도 없고


운석이 떨어져서 헐리우드 영화가 실제로 일어나는 일도 없었고

(석유시추공이 우주선에 타는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았고)


세컨트 임팩트도 일어나지 않고, 앙골모아 대왕도 없었습니다.




가이낙스도 레이랑 아스카가 너무 많이 팔려서 잘 나가는 회사가 되는 그런 시절로 왔습니다. 이제 공포와 압박감, 엄숙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이 점이 제가 말하는 중대한 경계입니다. 바로 공포 입니다. 더 이상의 공포는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출발선. FLCL은 그 출발선에서 탄생했기에 에반게리온과는 너무나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공포는 엄숙함, 딱딱함, 경직 그리고 차가움의 어머니입니다. 두려움에 떨면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 이 점 때문에 통치 기술 중 하나가 바로 공포정치입니다. 공포로 사람들의 이성과 감성을 마비시키죠 그렇다면 공포의 반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웃음입니다. 무섭거나 두려울 때 헛웃음이 나오는 것은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인 겁니다.  어떤 개념이 웃긴다면 그건 바로 무섭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낀다면 인간은 웃음을 통해 극복하려 합니다. 희극과 풍자극 또한 그 맥락과 비슷합니다. 지배층과 지배이념을 희화화 시킴으로써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는 것.


(공포와 웃음의 역학관계에 대해선 진중권 선생의 미학 오디세이를 참조 하세용)


이러한 사실 때문에 두 작품의 분위기와 어른들에 대한 묘사가 판이한겁니다. 에반게리온은 공포와 불안의 시대를 그리고 있습니다. 교조적 집단 제레는 사해문서를 해석해서 세계를 주물럭 거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에 대항하는 겐도 역시 자의적 해석을 지닌 자일 뿐입니다.  그런 어른들이 바로 아이들을 전장으로 싸움터로 내모는 겁니다. 


'너가 아니면 안 된다' '네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야'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네가 도망치면 우린 다 죽어' '이 곳만이 너의 정체성을 보장해 주는 곳. 유일한 쉼터'


어른들을 격려와 공포가 뒤섞인 귓속말로 어린 아이들을, 순진하고 여린 아이들을 상처냅니다. 싸우지 않으면 종말이 온다고 하니 어쩌겠습니까? 


***


근데 시간이 지나고보니 다 개뻥입니다. 모든 것이 다 구라고 치부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란 말입니다!!!!



이제부터 좀 신경써서 따라오시길 바랍니다. 다음 설명은 에반게리온의 인물과 단체에 프리크리의 설정과 비교해 볼 작정입니다.


(좀 더 많은 어른들이 등장하지만 이미지 편집이 귀찮으니 이정도만)



심판의 날에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고 날이 밝아오니 어른들이 새롭게 보입니다. 항상 속을 알 수 없고 차가운 도시 남자인 아버지는 알고보니 그냥 한량에 지나지 않은 겁니다. 다분한 오덕끼에 쭉쭉빵빵 예쁜 여자를 보면 맨날 추근댑니다. 이 꼴을 보니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는 제레는 또 어떻습니까? 이거 순 구라만 때리고 조직의 이름도 제레가 맞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외계인(사도)이 지구를 침략한다고 거기에 대비해야 한다고 맨날 부르짖더니 실상은 저기 산에 있는 다리미 (메디칼 메카디카)가 바로 외계에서 온 거라고 합니다.  아니 외계인이 벌써 우리 옆에 있다니 이게 말이나 됩니까? - 그리고 하는 꼬라지도 허접입니다


그외에 어른들도 다 웃긴 사람들입니다. 할아버지는 실없는 인간이고 선생이란 작자는 젓가락질도 잘 못해요. 


그래요.



지나고 보니깐, 모든 것이 다 웃기더라구요.


***


FLCL, 프리크리는 이런 우스꽝스러운 곳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계속]





* 제 이야기가 진짜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전 재미난 해석을 원할 뿐입니다. 유세윤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면 말고!~"


* 모든 이미지는 인용을 위해 쓰고, 이미지의 저작권은 가이낙스에 있슴돠


[마마마]취급 주의 -연대- 깨지기 쉬움.

토모에 마미는 자신의 동료에게 총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소울젬이 마녀를 낳는다면 모두 죽을 수 밖에 없잖아!"


전 방송인 강병규는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양준혁이 결국 우릴 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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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의 엔딩부는 꽤나 흥미로운 파트입니다. [마마마]란 작품 자체가 다른 전형적인 장르의 클리셰를 비틀어버렸지만 12화에서 보여주는 범우주적 전개는 '가이낙스'가 자주 보여주던 그 것과 상당히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마법소녀물이 있었을까요?) 특히 다이버스터(건버스터2) 최종화와 [마마마]의 최종화의 양상은 진짜 비슷합니다.


 

그래서 잠시 자료를 검색해보니 샤프트랑 가이낙스는 전부터 협력작업을 했던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마호로매틱>이었구요. 하지만 그 속의 내용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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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낙스의 모태 자체가 1~2세대 오타쿠인 만큼 그네들은 구시대적 가치를 항상 염두에 긍정적으로 표현하려 합니다. 이에 대해서 안노감독의 [에반게리온] 그리고 츠루마키 감독의 성향을 설명하시며 반론을 펴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근성열혈물 <톱을 노려라!>를 제작했으며 지금에와선 역작 [신세기 에반게리온] 자체를 뜯어고치고 있습니다.  츠루마키 카즈야 또한 작품을 냉철한 분위기로 채우는 타입이 아니었습니다. [다이버스터]의 결말을 보시면 압니다.


인류는 우주괴물에 의해 정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지구까지 버리겠다는 일념도 무너진 순간 라르크는 "근성"과 "노력"의 기치를 내세우며 노노와 힘을 합칩니다. 둘의 연대는 붉은 번개가 되어 거대한 괴물을 찢어버립니다. 신진 가이낙스가 제작한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도 연대의 위력은 여전합니다. 합체 라던가? 대그렌단 이라던가? 뭐~ 이렇게 저렇게요.


가이낙스란 집단이 보여주는 어른을 비교적 냉소적으로 그린 것에 비해 "근성","노력"같은 가치는 미덕으로 미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일제시대의 정신승리법 계승이라는ㄴ 비아냥도 없잖아;;;) 또한 연대주의를 지지하고 연대를 긍정적으로 봅니다.그들이 왜 그렇게 표현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1~2세대 오타쿠가 추앙해 마지 않는 '미야자키' '토미노' 감독의 좌익성향에 영향을 받았는지 아니면 소년 만화의 '우정''승리'노력' 때문인지 아니면 진짜로 태평양 전쟁에 대한 정신승리법인지...



그러면 이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를 볼까요? (다른 샤프트제 오리지날 아니메는 패스하겠습니다. 가이낙스처럼 굵직한 것도 없고 뭐..)


 


 충격적인 호무라의 회상이 지나고... 모든 연대의 가능성이 깨어진 상황에서 아케미 호무라는 홀로 거대한 재앙 - 발푸르기스의 밤 - 에 대항하러 갑니다. 냉정하기 짝이 없는 의지의 마법소녀, 허나 호무라란 개인은 세계와 결투를 벌여 몰락하고 마는 비극의 주인공일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지고 마는 호무라... 그런데 그 앞에 우연히 기적적으로 '여신'이 나타나 재앙을 날려버립니다. 흔히들 말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 결말입니다.


가이낙스의 방식보단 차갑게 느껴집니다. 서로간의 견해차(마미X쿄코 / 사야카X쿄코) 혹은 리더의 부재(마미), 배신(마미). 여튼 이런 저런 이유때문에 이 작품에서 연대, 그 자체는 부정적으로 그려집니다. 그나마 남는 게 호무라X마도카 페어인데 이들은 앞서 2번이나 실패했습니다. 결국 개인만이 남아 재앙과 독대하게 됩니다. 만약 마도카가 여신으로 각성하지 않았다면 호무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리하자면 악과 재앙을 이기려면 로또복권에 당첨되는 천운이 있어야 된다는 생각입니다. 또한 개인의 연대도  꽤나 많은 손실을 감수해야하니 방법으로 꼽을 수 없습니다. 그나마 생각의 여지를 남겨두는 것은 개인의 의지 정도?


어느 쪽의 견해가 타당한걸까요? 최근에 어떤 사건이 트위터에 벌어졌습니다.

http://news.nate.com/view/20110817n11858


2000년 당시 야구계를 뒤집어 놓은 사건이 바로 선수협 파동이었습니다. 대충 설명하자면 송진우,양준혁, 마해영, 강병규등 몇몇 선수들을 중심으로 야구선수의 권익보호단체를 결성하려했는데 그 꼴을 가만둘리가 없는 구단 프런트와 갈등을 빚은 사건입니다. 여러 진통을 겪은 후에야 지금의 선수협이 결성되었지만, 당시 선수협 설립에 앞장서던 선수들은 징계성 트레이드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안은 아직도 여러가지 말이 너무 오고가서 말을 아끼겠습니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제와서 서로 비난하고 변명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도 한없이 연약한 것이 '약자의 연대'란 걸 절감합니다.



아니, 너무나 거대한 '그 들'이 너무 두려운건지도...




[엘소]지금 방학 맞나요?

도클이랑 비던 다 주금 사람이 없음 ㅋㅋㅋㅋㅋㅋ

진짜 템귀들은 다 접은 모양. 길드에도 사람이 없고.... 아 심심하고...

윈스는 이제야 만렙인데.... 할 게 없고... 엘마로 도클 돌라카니 자꾸 늅늅들이 엉뚱한데서 죽어!!! 아놔!!!




패치 자체는 악감정 없는데 사람이 없으니 지겹다. 그냥 물의 전당에서 헨델 노가다나 할까.?

아 근데 또 뿔주면 어떡해.

[리뷰]마당을 나온 암탉 : 환상이 없는 동화.


 






- 마당을 나온 암탉은 황선미 작가의 동명동화를 원작으로 한 한국 극장애니메이션입니다.
- 제작기간 6년에 거대배급사인 롯데엔터 그리고 충무로에서 잔뼈 굵은 제작사로 유명한 [명필름]에서 투자해서 만든 한국애니의 기대작입니다. (사실상 올해 마지막이죠. 소날꿈은 죽었슴다!)
- 저는 21일 롯데 센텀시티점에서 열린 시사회를 보고 리뷰를 씁니다.
- 1부에서는 작품의 외적요소를 분석해봤습니다. 연출과 영상, 구성, 연기.
- 2부는 주역캐릭터 '잎싹'과 문제의 결말에 대해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1. 영상과 연출
제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마당을 나온 암탉]은 극장용 애니치고는 동화수가 적은 작품입니다. 그러니까 부드러움보단 역동성이 두드러지죠. (특정장면에서는 셀화수가 늘어난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보자면 말이죠) 하지만 전혀 아쉽지 않은 것이 이 작품은 의외로 역동성이 돋보이는 내용이 많은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각색작업을 거치면서 [마당을 나온 암탉]은 좀 더 가족 블록버스터 영화의 성격이 짙어졌습니다. 추가된 비행장면이나 비중이 높은 결투씬등이 그 근거죠. 특히 인상 깊었던 연출은 비행대회의 절정부분인데요, 거친 연필 러프선들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연출이었습니다. 비행의 스릴과 박진감을 높여주는 영리한 연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작품의 진가는 다른데에 있습니다.
 
  이 작품은 영상미가 탁월합니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동물 애니메이션중에서도 독보적입니다. 디즈니풍의 서양식 캐릭터가 동양화풍의 배경과 결합하면서 시너지효과가 발생한 것입니다. 특히 한국의 자연미를 철저한 답사를 통해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거기에 동양화풍을 넣으면서 세계 어디에도 내놓을 만한 독보적인 미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예술작품에서 이런 오리지날리티는 많은 점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오직 하나의 독보적이고 온전한 세계를 구축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러면서도 배경은 작품을 압도하지않고 인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룹니다. 왜냐하면 잎마디, 나뭇껍질까지 섬세하게 표현하면서도 오브젝트 사이사이에 여백을 주었기 때문입니다.(이걸 공기원근법이라고 하나요?) 이런 2D의 감성은 윤기 뽀송뽀송한 미국 3D애니들은 잡기 힘든 우리만의 감성과 표현의 산물이죠. 이런 아름다움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죠. 그리고 그걸 창조하는데 성공한 제작진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 뭐, 서양식의 동물 캐릭터가 아쉬울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의견은 이것은 타협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반대중들은 픽사/디즈니식에 너무 익숙해져서 캐릭터마저도 한국식으로 표현하기는 무리였다고 제작진이 판단한 것 같습니다. 이건 현명한 판단이라고 봅니다. 몇몇 작품들이 한국식 감성을 표방하고 나왔지만 미완의 성공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 1.02 음악
체코 오케스트라와 협동작업을 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여 음악은 무겁지가 않고 속삭이듯이 영상에 잘 스며듭니다. (씬에 따라 신나는 음악도 나옵니다만) OST도 훌륭하고요. 제가 음악에는 지식이 전무한지라 여기서 접겠습니다.(아직 바람의 멜로디 아이유버전은 안풀렸습니다 ㅜ) 

3. 연기

박철민, 문소리, 유승호, 최민식같은 스타배우를 캐스팅해서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몰고 왔었죠. 찬찬히 듣어보면 박철민 빼고 다들 장단점이 있는 연기입니다. 크게 어색함은 없지만 유승호의 구멍이 너무 크네요;
많을 분들이 지적하는 유승호의 연기는 어쩔수가 없는 것이, 변성기 시절에 녹음해서 지 혼자 붕붕떠버리는 불상사가 발생한 것입니다. 도대체 캐릭터의 연속성이 없어요! 연기는 괜찮은데 극복할 수 없는 톤의 어색함. 이건 제작진의 판단미스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른 배우나 전문성우를 기용했어야 했습니다.
 
- 개인적으로는 엄상현 성우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고운 음색부터 반항끼 넘치는 목소리까지 소화가능하죠.

최민식씨는 너무 근엄하고 카리스마적인 발성을 한다는 것이 양날의 검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리라 예측합니다. 박철민씨는 적절한 캐스팅이라고 봐야합니다. 캐릭터자체가 박철민씨의 개그이미지에 기대어서 그런지 잘 맞고, 천성이 애드립에 능한 배우라서 극의 분위기를 띄우는데 공헌한 일등공신입니다.

주역인 암탉 역의 문소리씨는 전체적인 연기는 좋았습니다. 막 세상에 나온 여인의 설레임부터 헌신을 다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까지 감정선을 잘 잡아냈습니다. 초반부에 음색이 너무 천진한 소녀틱하게 연기해버려서 약간 오글거리는 감도 없잖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최고의 연기를 보여주신 분은 주역 4인방이 아닌 족제비 목소리를 담당한 김상현 성우를 꼽고 싶습니다. 전형적인 악당연기부터 어머니의 목소리 그리고 클라이맥스 부분의 오열연기는 최고였습니다. 등장비중이 낮음에도 팔색조같은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4.각색은 어떻게? 구성은 어떤가요

 

각색의 방향은 웃고 울고 즐기는 동적인 재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몇몇 내용은 생략하면서 개그 캐릭터'달수'의 추가와 박진감 넘치는 비행대회 씬까지. 거기에 잔잔한 동화의 분위기와 달리 좀더 여름철 영화에 맞게 연출만큼이나 전개도 속도감있게 흘러갑니다. 이런 각색은 장,단점이 명확합니다.

 

확실히 철학적인 무거움이나 주제의 울림은 원작보다 약합니다. 밀도 높은 이야기는 관객을 쥐고 흔들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잠시 사람들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극을 클라이막스로 몰고 갑니다. 저같이 좀 더 주제적인 완성도를 중요시 하는 사람은 좀 아쉬움을 느끼는 부분이었죠. 하지만 이는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몇몇 한국애니들은 너무 감성을 중요한 나머지 지루한 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덕에 각 캐릭터들의 감정이나 마음을 관객들이 잘 따라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면전환이 급박하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피지 못하면 왠 뜬금없는 반응이냐고 반문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니 말입니다.

 

그런 점들은 아쉬우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흐름상에서 정말 중대한 불상사는 없는 건 정말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이런 사소한 점이야 말로 중요한데 이런 점을 숙지하고 있는 영화는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 유명한 디즈니의 <라푼젤>조차도 스토리진행을 어영부영 넘어가버렸으니 말입니다. 실수가 없다는 점, 이건 분명히 칭찬해야 합니다.

 
전체적으로 아쉬운 점이 있지만 중대한 실수가 없습니다. 탄탄한 이야기가 일으키는 감동의 물결을 느끼고 싶으시다면 꼭 보시길 바랍니다. 표값이 아깝지 않는 그런 작품입니다.
 
2부


 

 

 

1. 잎싹

 

1부에서 언급했듯이 산만한 해 보일 수 있는 극전개가 정돈되면서 이끌어가는 몫은 전적으로 주역 잎싹에 달려있습니다. 극의 중반부 이후 잠시 초록이에게 주인공을 내주지만 [마당을 나온 암탉]은 잎싹이라는 닭의 인생이 메인 스토리입니다. 여타 작품과 마찬가지로 잎싹의 행동이 주제로 이어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잎싹에 대한 분석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이 애니가 다른 작품과 달리 철학적인 힘을 얻고 통속적인 신파극이 아닌 것은 잎싹이란 닭때문입니다.

 

- 왜 그녀는 인사를 하는가? 세상에 어필하는가? 왜 그녀는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려하는가?

 

잎싹이란 닭은 항상 자기 소개를 합니다.


"안녕! 난 잎싹이라고 해!"


새로운 세상을 나갈때 마다, 새로운 동물을 만날 때 마다 잎싹은 자기 소개와 함께 인사를 건넵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특징으로 이름을 지어줍니다. 왜 잎싹이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의지와 용기가 없이는 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닭이였기에 이런 치기? 어린 행동이 가능하질도 모릅니다. 작품에서도 나와있듯이 세상은 무섭고 위험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알아가면서도 잎싹은 앞의 행동을 함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습니다. 잎싹이란 캐릭터가 강단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이런 재해석은 상당히 이치에 맞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세상을 알아가고픈 의지, 이것은 곧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진정한 사랑은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갑자기 생기는 충동적인 것이 아닌, 마음속에서 울어나오는 의지란 말이죠. 의지가 박약한 자에게는 사랑 또한 없습니다. 외모의 차이 , 성격의 차이 그리고 버림과 이별에 대한 공포를 맘 속에 간직한 자는 쉽게 사랑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잎싹은 무모하리만큼 정면돌파합니다.


왜 좀 다른게 어때서?서로 달라도 얼마든지 사랑할수 있는거야


그녀의 의지는 종과 세계를 초월합니다.때문에 주위에서 꽃 달린 미친 닭이라고 놀림 받죠. 그러나 잎싹이야말로 자연의 섭리를 실천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에 의해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하고 생명을 키워내고 종국에는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네! 잡아먹힙니다. 잎싹의 사랑은 종의 경계를 초월하였습니다. 오리새끼를 키워낸 그 닭이 어린 족제비들을 위해 제 한몸 바치는 장면은 얼핏 보면이상하지 않습니다.


동화책과 마찬가지로 영화에서도 잎싹의 죽음이후 시점은 세계를 높은 탑에서 바라봅니다. 잡고 잡아먹히고 태어나고 죽고 사랑하고 헤어지는 그런 하루하루가 계속됨을 보여줍니다. 세상 어딘가 높이 하늘을 날고 있는 초록의 모습과 함께 화면은 어두워지고 주제곡인 [바람의 멜로디]가 흘러나오면서 극은 마무리됩니다. 언뜻보면 잎싹은 승리한 것처럼 보입니다. 제가 원하는대로 살아왔고, 죽었으며 자식도 훌륭하게 키워냈으니 말입니다....

 

2. 근데 이 결말은 도대체 뭡니까?

 

잡고 잡히고 먹고 먹히는 그런 보통 일상이 계속 됨 / 선인의 결말이 왜 불행한가?/이런 결말이 가장 자연스럽고 진리에 가깝다고 알고는 있지만....


무한한 사랑. 죽음으로 인해 철학적 완성도에 방점을 찍음. 그리고 동화를 넘어서는 문학적인 성과를 이룩.


하지만 제가 원작동화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결말은 철학적인 교훈을 던져주면서도 정말 위험합니다. 어린시기에 보고 듣고 읽는 것은 전체적인 인격형성에 있어서도 아주 중요한 과정인데 말이죠. 근데 아이들은 이 작품으로 인해 삶이 가지고 있는 섬뜩한 진실이 무의식적으로 알아버리는 것입니다. 정말 위험합니다. 낙담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상황을 만들어버린다는 겁니다.

 

여기에 대해선 진짜 뭐라고 한마디 해야합니다. 좀 더 판타지가 개입해서 최소한 해피엔딩의 단서를 조금이나마 심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수정이 원작이 가지는 의미가 퇴색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저는 진정 아이와 어른을 아우르는 동화라면 뭔가 생각의 여지를 남길 수 있게 그렇게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열린 세상을 꿈꾼 자의 이야기의 결말이 닫혀있다는게 말이 됩니까? 우리가 왜 동화나 소설, 영화를 봅니까? 불의가 가득한 세상을 반대하고 상상속에서라도 착한 사람이 행복한 결말을 보고 싶다는 그런 욕구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그 시점에서 이미 잎싹은 자기 아들인 초록이와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도 희생을 하는게 자연스러운걸까요? 자기희생은 물론 숭고하면서 거룩합니다. 다만 너무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서 이 희대의 엔딩에서 대의를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려는 교조적인 운동권세대의 한 모습을 보는건 제 과대망상증때문입니까?

 

후....


잘 정리가 안되는군요. 핵심만 말하고 마치겠습니다.

1. 이치나 전개에 자연스러운 결말인가?

2. 작품 주제나 파격적인 효과를 위해 성급하게 캐릭터를 죽인 것인가?

3. 물론 동화도 활자매체이니 만큼 표현의 자유는 있다. 그러나 동화는 어린이들,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 보는 매체이다. 그만큼 표현이나 전개에 있어서도 그만큼 정성과 고찰, 노력이 더 쏟아져야 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과연 그러한가?



잎싹의 입장에서는 죽음조차도 자신의 승리라고 믿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항상 삶만을 바라보았으니까요. 그래서 죽음의 무덤을 넘어서 아들을 훌륭히 키워내고 자신을 남을 위해 바쳤습니다. 하지만 이래선 너무 슬프지 않습니까?..... (판타지가 없는 동화라니!!!)

 


 

- 흥행이 되지 않을거란 말은 철회하겠습니다. 우리나라 관객은 기본적으로 비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하니까요. 아마 100만은 가볍게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머리가 아프네요.

- 이 비판은 원작에 대한 징징거림입니다. 애니 제작진에 대한 하소연이고요. 좀 더 밝게 끝을 맺었더라면 좋았을텐데요.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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