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프리즘. 빛이 분화하는 그 순간!
26살 백수남 캣츠비. 자기 집도 없고 돈도 없고 절친 하운두의 달동네 집에 꼽사리끼어 사는 불쌍한 이 시대의 청춘. 찌질하기 짝이 없는 이 인생에 마지막 남은 희망 ‘페르수’마저도 그를 떠난다. 여친을 떠나보낸 캣츠비 그는 이제 당차게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한다!

엠파스에 한번 강판당한 만화가 이 정도로 히트할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 웹툰은 충격이다. 한국 웹툰의 빅뱅이었다. 그전의 웹툰이 일상을 복기하는 추억의 형태였다면, 강도하 작가는 그 세계를 완전히 뒤바꿔 놓은 것이다. 완전한 픽션의 세계로 말이다. 그리고 예술의 경지에 근접한 무언가를 창조해낸 것이다.
1화부터 (수인이지만) 여성 가슴을 노출시킨 것처럼, 이 작품은 처음부터 뭔가가 달랐다. 그 당시 작품들의 기본은 바로 공감이었다. 그리고 공감을 통한 단발성 개그가 주류를 이루었다면, 강도하는 과감하게 문학의 서정성, 영상기호를 도입해 문자 그대로의 로맨스를 추구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청춘, 2류 인생에도 로망이 있고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쓰레기 더미의 달동네가 프로방스가 될 수 있다고 강도하는 역설한다.
또한 초반의 청춘물이 통속치정극으로 돌변하면서 보여준 심리묘사와 충격적인 반전은 만화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에 대한 훌륭한 예시를 보여줬다고 생각된다.이 작품때문에 강도하는 문화탄압으로 볼모지가 되었던 한국만화시장의 계절을 원래대로 돌려놓았다. 본디 만화란게 이런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이 만화의 허들이 높다는 점 그리고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요소가 많다는 것은 마이너스 요소이다. 강작가는 작품을 진행하면서 인간의 윤리센서를 사정없이 강타한다. 그렇게 되면서 '위대한 캣츠비'의 가장 큰 장점인 감성과 서정성은 무참하게 파괴가 된다는 것... 이는 강도하 작가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위대한 캣츠비’이후 히트작을 내놓지 못하는 작가를 보자니 이제 강도하 작가도 어느정도 고집을 내려놓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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