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비판 - 낭만 아래에 숨어있는 것들에 대해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을 좋아하고 있고 호평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물론 [너의 이름은]은 장점이 있고 일본 1500만이나 관람한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덕에 대한 리뷰는 너무 많으니 저는 비판적으로 접근할 것입니다.

 

1. 멜로드라마에 사랑과 드라마가 없다.

 

여전히 신카이의 장점이자 단점. 인물 간의 갈등, 즉 드라마가 약합니다. 왠만한 영상매체속에서 인물들은 부딪히고 갈등하기 마련인데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의 인물들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지나쳐버리죠. 주역들 간의 공감대가 생길 시간도 사건도 없었습니다. 영혼의 뒤바뀜이 그런 계기가 되는 사건이 된다고 한다면 몇번의 영혼교환 사이에 주역들간에서 어떤 사건,사고가 터져야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는 이유가 없다면서 단지 몇번의 영혼이 뒤바뀌고 나니까 서로 사랑하게 되버렸다? 이건 명백하게 인물설정이 뭉게진겁니다. 이 작품의 배경작화처럼 말이죠.

 

그 증거로 타키안의 미츠하는 오쿠데라와 교류하고 언제나 욕망하는 도쿄생활을 직접 누립니다. 그런데 왜 뜬금없이 타키의 생활이 아니고 그렇다고 도쿄학생인 타키를 동경하는것도 아닌 타키 그 자체에 연정을 품게 되는겁니까? 그리고 타키가 욕망하는 인물은 오쿠데라 선배임에도 불구하고 영혼교환 후의 시골생활에 너무나도 잘 적응해버립니다. 이 부분 역시 창작자의 사기입니다. 이토모리와 도쿄는 열차타고 몇시간이면 도달할수가 있는데 왜 이토모리에 머무르고 마는 것입니까?


 

이런 설정붕괴가 있어도 관객들은 타키와 미츠하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거라 믿어버리는 사태는 왜 벌어지는걸까요? [너의 이름은] 속에서 타키와 미츠하가 대면하는 시간은 길어봐야 5분 정도입니다. 작품 속의 주인공인 타키와 미츠하는 항상 엇갈리고 서로 등을 맞댑니다. 시선이 마주치는 씬 자체가 적습니다. 멜로장르임에도 불구하고요! 신카이의 연출은 관객의 마음속에 기대감을 만들어냅니다. 영상에 익숙한 현대인들이라면 대번 눈치채기 마련입니다.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타키와 미츠하는 만날 수 없다는 것. 그런 모습은 둘이 만나야 한다는 이유에 당위성을 부여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금지된 것에 대해 미련을 남기고 욕망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관객은 남녀간의 사랑을 기대하고 이미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영상문법적 이유입니다. 현실 속의 총과 영상 속의 총은 다분히 다른 장치입니다. 현실 속의 총기는 그냥 총기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관찰하고 누구의 물건인가? 어떤 용도인가에 대해서 유추를 하게 되죠. 하지만 스크린 속의 총기를 목격하면 우리는 이 총기로 인한 사건을 기대하게 됩니다 - 이 총이 격발한다면 '체호프의 총'이 되고 불발된 채로 그저 존재한다면 '맥거핀'이 되죠. 이런 이유로 관객은 여러차례 멀리 떨어져있는 주인공들의 처지를 보면서 저절로 그 남녀가 만나게 되는 순간을 갈망합니다


신카이 마코토의 영리한 연출이라라고 말할 수 있지만 물타기에 불과하며 여전히 각본의 재능이 없음을 증명하고 맙니다. 타키와 미츠하간의 영혼교환이 일어났을때는 신카이는 그 시간대를 뮤직비디오로 날려버리는데, 신카이 마코토는 사랑에 이유가 있을까?라며 어물쩡 넘어갑니다. 하지만 창작자로서는 직무유기입니다. 그래서 멜로에 멜로가 없는것입니다. 인간사이의 공감이 없다면 사랑도 불가능합니다. 사랑의 기본이란 감정과 기억의 공유입니다. 하지만 신카이 감독은 낭만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멋대로 그려버리는바람에 감정이 최고조에 치닫는 결말부분에서는 관객들은 감정선을 찾다가 놓쳐버리고 영상미를 음미하는걸로 대신합니다. 이 점 에선 한국 드라마작가들이 훨씬 뛰어나죠.




2. 낭만 낭만 낭만

신카이 마코토는 이번 작품에서 오타쿠의 리얼리즘대신에 운명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편이 더 멋있고 낭만적이기 때문입니다. 구질구질하게 밀고당기는 전투같은 사랑이나 나만 앓고마는 짝사랑보단 단 한번의 만남으로도 운명임을 알수 있는 영화같은 사랑. 운명의 붉은 실때문에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결국엔 이루어지는 사랑이야말로 누구나 꿈꾸는 낭만적 사랑입니다.

 

그 맥락에서 무스비라는 운명론이 강조됩니다. 헌데 신카이 감독은 무스비가 중요하지 않다고 발언을 하였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명백하게 동일본 대지진과 대재앙의 상징인 혜성의 충돌장면마저 낭만적으로 그려낼수 있는것은 어차피 운명론에 의해 이토모리는 구원받기 때문이죠.

 

이 작품때문에 희망을 얻는 사람들도 분명 있을 것이지만 작품속의 운명론적 세계관은 낭만적 분위기를 극대화되는데 기계적으로 소비되는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츠하와 미츠하아버지간의 가족갈등은 과감하게 생략된 걸 보면 알수 있듯이 낭만을 헤치는 요소는 과감하게 지워집니다. 인간관계가 과감하게 배제되는것에서 아직 세카이계의 그림자를 느낄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음으로 카타와레도키. , 황혼의 시간이라는 개념 역시 낭만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저승과 이승의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것이 흐릿해지는 개와 늑대의 시간. 그 찰나의 시간속의 나와 너. 2사람이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이 시간은 모든 사람이 꿈꾸는 은밀한 욕망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욕망은 현실에선 은폐되기마련이며 매체에서도 퇴폐적으로 연출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신카이 마코토는 이런 욕망을 감추고 그 상황자체를 낭만적으로 그리는데에 도가 튼 인물이죠. 그의 전작인 언어의 정원이 그랬지 않았던가요? 특정시간, 특정장소에서만 드러낼 수 밖에 없는 내면의 애정.

 

뒤틀린 애정관이라고 할순 있지만, 모든 것이 투명하게 공개되는게 일상인 시대에서 그런 욕망마저 싸잡아서 욕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3. 타인이 없다.

 

그렇다면 그 낭만은 누구의 것입니까? 감독의 시선은 철저히 도시, 자기중심적입니다. [너의 이름은] 전형적인 소년 소녀를 만다다 식의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고, 이 이야기는 남자의 이야기다. 도시인의 이야기와 고통이 있죠.

 

타키가 지속적으로 겪는 망각은 도시인의 고통을 뜻합니다. 정보의 홍수속에서 끊임없이 배워야 생존이 가능한 도시인들에게 망각은 생존의 필수과정입니다. 잊은 만큼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서 경쟁하고 또 잊어버려야 하죠. 미츠하 역시 타키에 대한 기억을 잊고말지만 미츠하의 망각은 미츠하의 극중퇴장으로 인해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주변인이 어떻게 그려졌는가? 미야미즈 신사의 의식은 한 폭의 동양화입니다 어두운 밤속 홀로 빛나는 무녀의 춤사위. 그리고 무녀들이 입으로 빚는 신을 위한 술. 또한 도시주변인의 고민이라고 해봐야 낡아 빠진 시골을 벗어나 모던 라이프를 만끽하고 싶다는 사랑스런 고민에 불과합니다. 앞의 단락에서 언급한 혜성충돌. 이 연출 또한 작가나 혹은 작가의 친족이 대지진의 피해자였다면 그렇게까지 아름답게 그려질수가 있겠습니까? 더욱이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참사가 과연 피할 수 없는 천재지변이었습니까? 인간이 자초한 참사도 분명 있었습니다.


[너의 이름은]의 결말부에서 주인공들의 노력?으로 인해 현실은 개변되어서 이토모리는 파괴되지만 주민들 다수가 생환합니다 결과만 놓고본다면 상처는 치유된겁니다. 그런데 지금, 2회차의 이토모리 주민들은 원래라면 살 수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파멸을 기억 할수가 없어서 역사와 기억과 단절되버린거죠. 상처는 치유되면 흉터를 남깁니다. 그런데 상처마저 없다면 그것이 참된 치유?라고 할수 있을까요? 신카이가 그리는 치유란 재와 먼지구덩이속에서 절망을 극복하려는 열망이 아니라 대안적 현실을 만들어버리고 거기로 도피하는 것에 더 가까운 것이죠. 누구나 꿈꾸는 상상인데 나쁘게 말하면 유치한겁니다. 뭐 어떻게든 살면 좋다면야 달리 할 말이 없군요.

 

4 국가주의

 

그래서 나는 [너의 이름은]도 일본우경화의 흐름과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번 무너져서 그 의미는 알수가 없지만 그래도 전통은 소중한 것이라고 말하는 미츠하의 할머니.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나라는 명백한 정복국가이며 먼 옛날에 성립이후로 2차대전까지 점진적으로 팽창된 역사를 은폐하면 이런 주장이 나올 수 있죠. 설사 미야미즈 신사가 지방신을 모시는 신사라고 하더라도 국가신토에 의해서 류쿠나 아이누족 문화, 지방신앙이 상당부분 파괴된 21세기에서 전통문화를 지켜한다?

 

또한 '나는 너, 너는 나'무스비라고 하는 관념.그 것 또한 무스비. 저 것 또한 무스비. 전통과 유대와 일체감이란 국가주의진영에서 가장 중요하시는 덕목입니다. 왜 우리는 하나인가? 언제부터 우리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나? 라는 의문에 작가, 신카이 감독은 대답할 생각도 없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낭만적이지 못하니까요.

 

어쨌든 [너의 이름은]이 초흥행작이 된 건 이런 요소와 전혀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입니다. 물론 온고지신의 정신은 어느때나 잊어서 안되고 각나라의 전통문화는 소중한 유산이지만 이렇게까지 GOback 해야 할까?

 

 

이마이시 감독의 작품인 [킬라킬]에서 '옷은 옷, 인간은 인간'선언과 비교하면 경악할 정도의 의식적 퇴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에반게리온 Q에서 안노 히데아키는 적어도 솔직했습니다. 뭐가 뭐인지도 모르겠지만 희망을 잃지말자는 안노의 고백에 비해 신카이 마코토는 [너의 이름은]에서 희망안에서 오래된 가치를 몰래 수면 위로 부상시키려 합니다. 이런 점에서 함대 콜렉션같은 세탁된 우익물이라고도 볼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신카이 감독은 우경화의 흐름에 휩쓸렸지, 그 흐름에 적극적으로 편승했다고 보긴 힘듭니다. 여전히 신카이 마코토는 '사회'라는 개념을 연출하는 것에 대해 주저하고 있습니다. 사회가 없는데 유대와 일체감이 뭔 소용인가요?

 

마무리

[너의 이름은]이란 작품은 그래서 나쁜 애니메일까? 성우들의 만담쇼에 불과한 [낙원추방]같은 애니메보다는 더 활기차고 움직이는 그림을 보는 맛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존 체계의 영상문법, 오타쿠적 리얼리즘에 벗어나서 좀 더 대중적이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일부계층의 감성에만 호소했던 작품들보단 [너의 이름은]이 애니메이션라는 매체 본연의 미덕에 충실했다는게 개인적 평가입니다.

 

그렇지만 이 작품으로 인해 오타쿠문화가 끝장나거나 새로운 전환점이 될꺼라는 것에는 일본평론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라서 가능한 체계 밖의 산물입니다. 동시에 협업이 등한시되고 장인 한명이 모든 분야에 관여하는 20세기 일본식 시스템아래에서 만들어진 작품이죠. 업계의 표준이 되기에는 너무 특이한 작품인겁니다. 한마디로 따라하기가 힘든겁니다. 애초에 신카이 마코토라는 창작자 자체가 상업적 성공에 집착했다면 [너의 이름은] 같은 수작을 만들지 못했을겁니다.

 

만약 일본애니메가 달라진다고 한다면, 신카이 마코토보단 아베노믹스가 더 큰 원인으로 작용하게 될겁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본애니메 주류는 사회적인 사고를 회피합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페미니스트란 작자들이 깽판치는 한국상황이 훨씬 더 건강한게 아닐런지요.



-신카이가 말하는 무스비와 LCL용액은 뭐가 다른걸까?

-나는 이작품떄문에 신카이는 인류보완계획 찬성론자라고 확신한다


 


덧글

  • 쇼카쿠 2017/01/30 04:07 # 답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똥글이네...
    머리에 든 게 없으면 이런 똥글도 글이랍시고 쓸 수 있구나...
  • ㅇㅇ 2017/01/30 07:11 # 삭제

    씹뜨억 새끼 지 좋아하는 거 비판한다고 바로 굵디굵은 손가락으로 부들대는 것 보소 ㅋㅋ 하나하나 반박이나 하고 댓글 달지 파오후씹덕새끼 답게 감정만 앞서죠 ;
  • ㅇㅇ 2017/01/30 09:29 # 삭제

    씹들씹들ㅋㅋㅋㅋ 이 글 보고 흥분한채 키보드 두드렸겠네ㅋㅋㅋ
  • 쇼카쿠 2017/01/30 14:49 #

    글쓴이 로각좁;;
  • 프레디 2017/01/30 09:39 # 답글

    미야자키 하야오의 반지의 제왕 비판처럼, 정치라는 색안경을 쓰고 세상을 보면 이런 글도 나오겠죠.
  • 2017/01/30 10:47 #

    1.동일본 대지진은 현대 일본을 뒤흔든 비극이었고 결국 정치적인 사안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세월호가 결국엔 정치진영을 가르는 선이 되었던과 비슷합니다
    2. 신카이 증언이나 너의 이름은 스토리를 봐도 대지진 이후의 일본을 그리는게 맞습니다. 결국 그 지점을 지나칠수가 없었습니다.
  • ㅇㅇ 2017/01/30 09:42 # 삭제 답글

    국가주의 타령은 웃고 넘어간다 쳐도 주인공들 케미가 없다 소리는 오타쿠와 일반인의 인식 차이가 맞음. 급식 먹는 나이에 그정도 시츄에이션이면 감정 안 생기는 게 더 이상하고 작품 내에서도 수많은 메타포들 떠먹여주면서 친절하게 알려줌.
    덕후들이나 알아쳐먹는 작위적인 연출이었으면 한국에서 cj배급없이 그것도 12세 일본애니로 350만 못 넘겼음.
    결말에서 감정선 끊기는 건 재해 이후 미츠하 사이드가 생략됐기 때문이라 보는 게 더 설득력 있을 듯. 그게 본작 최대 결점이기도 하고.


  • 2017/01/30 10:50 #

    기시감하나로 연애감정이 성립된다는거 자체에서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데요?
  • ㅇㅇ 2017/01/30 19:21 # 삭제

    기시감 때문에 걔들이 사귄다고 혼자 확신하고 답정짓 하니까 갸우뚱 거려지는 거임.
    누가 댁 글 해체도 해놨던데 가서 확인하시던가 아니면 랜선연애같은 거라도 좀 해보시길.
  • asdf 2017/01/31 10:19 # 삭제

    뮤비마냥 짧게 넘겼지만 둘의 감정의 교류가 일정기간 이어진 묘사가 명백하게 나온걸 기시감으토 퉁침?ㅋㅋㅋ
    나도 그쪽 묘사가 좀 분량이 아쉽다 싶긴 했는데 씨발 나도 오타쿠감성이었군!
  • 2017/01/31 15:15 #

    그러면 타키안의 감정이 오쿠데라보다 미츠하의 손을 들어주게되는 결정적 사건을 보여주세요. 있어야할 이벤트가 안일어나는데도 인물이 공략되버리니까 이상하다구요.

    전전전세의 MV파트가 그 사건이라고 한다면 타키의 욕망은 창작자에 의해 조작되었다라는게 내 주장이고. 관객입장에선 타키는 분명 미츠하를 좋아하겠거니하는거는 트릭에 의한거고 좀 더 분명하게 감정선을 찾으려는 관객을 배려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았을거구. 타키가 미츠하가 그 자체가 좋은건지 이토모리의 시골생활이 좋은건지 미야미즈 가문이 신긴한건지 내는 잘 찾지 못하겠습니다.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좀더 정확히 서술해야했음. 이건 몬스터도 아니고 어느샌가 내 안의 미츠하가 이만큼 커졋어 인가요?
  • asdf 2017/01/31 20:23 # 삭제

    결정적 이벤트가 필요한지? 세부적 묘사가 모자랄 뿐 둘이 서로의 몸과 생활을 교차해가며 감정의 교류가 있음을 보여주었고 그거면 충분했지. 그와중의 일화들을 더 넣어줬음 재밌게 봤을거란 맘은 있지만.
    공략 이벤트라니 이게 왜 리얼충에게 먹힌지 알겠네욬ㅋㅋㅋ
  • 2017/02/01 17:11 #

    그런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는게 현실적일수도 있지만 비약이 너무 심한게 아니냐는거입니다. 각본이 좀더 꼼꼼했으면 내가 감정선 못찾아서 결말부분에 김다 새지도 않을거구요.

    너그러운 당신 관점에서 본다면야 내가 너무 조혼나게 깐깐하거라고 해두죠.
  • asdf 2017/02/01 22:06 # 삭제

    너그럽니 깐깐하니의 문제가 아니라
    바라보는 시각이 아예 다르시구만 뭘 ㅋㅋㅋ
  • 비블리아 2017/01/30 11:04 # 답글

    요즘 여혐딱지 붙이는 것만큼 유행하는게 일본작품에 우익딱지 붙이는 거라지만 이 작품에 국가주의딱지, 우익딱지 붙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대체 이 애니에서 류쿠나 아이누족 문화를 들먹여야 할 당위성이 대체 어디 있는지 의문일 뿐더러
    무스비를 언급했다고 국가주의다? 무스비라는 건 로맨스물에서 흔히 나오는 전생의 인연 이런거를 다른 식으로 포장한 것일 뿐 새로울 것도 없음. 지구에 환생해서 다시 전생의 연인과 사랑하게 된 세일러문도 국가주의 애니라 할 기세.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유도가 아닌 농구를 택했다고 작가는 유도는 저급 스포츠로 취급하는가? 라고 비판하는 꼴임

    어떻게든 까고 싶어서 작정하고 이유를 어거지로 만들어내면 뭔가 쿨해 보이고 그러나?
  • 2017/01/30 11:46 #

    왤케 화가 낫음?
    그리고 무스비를 단순 전생의 인연이라고 이해했다면 오독아님? 무스비란 시공간을 초월하는 신과자연 그리고 인간사이의 유대,연결고리를 의미하는데 이 무스비때문에 결국 이토모리의 주민들이 살아나게 되는 엄청난 개념이고

    그런데 내가 지적하는건 이 무스비라는게 세계관 전체를 지배하고 있으니까. 사랑보다 위대한 무스비, 운명론 찬양이 좀 이상하다는겁니다 그리고 4번 마지막문단보면 내 주장을 내 자신이 반박하고 있음.
  • 비블리아 2017/01/30 11:57 #

    그러는 님은 왤케 심사가 뒤틀려서 안달이 났음?
    무스비가 시공을 초월하는 연결고리 운운하지만 결국 작품 전체에서 보여주는건 전생의 인연 이런거랑 근본적으로 다를바 없다는 거임. 그 전생의 인연을 보여주느냐 안 보여주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결국 무스비나 전생의 인연이나 운명론적 세계관인데 거기에 우익딱지, 국가주의 딱지 붙여놓는게 메갈보들이 여혐딱지 붙이는 것과 같은 수준
  • 2017/01/30 13:04 #

    전생의 인연과는 다르죠. 전생의 인연이란 지금이 아닌 이전의 삶에서 둘이 만나고 기억,감정을 공유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무스비로 인한 영혼의 뒤바뀜은 그냥 영혼이 뒤바뀐 것에 불과하고 타키와 미츠하간의 감정,기억의 공유는 희미하고 아예 없는 수준입니다. 아예 영혼교환이 된 기억마저 사라진다는 설정도 있죠. 그리고 분명히 타키는 오쿠데라 선배를 좋아한다는 설정이 있지만 어느샌가 무시되죠. 이걸 생략이라고 볼수 있지만 조작아닙니까?

    같은 운명론적 설정에도 세부적으로 차이가 있는겁니다. 만약 타키와 미츠하간에 영혼교환이라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후에 그 둘이 서로를 의식하고 간절하게 서로에게 애정을 품는 이벤트가 있었다면 우경화 문단은 삭제 했을것입니다.

    본디 갸루게 영상 제작자였던 신카이라면 그런 2차 이벤트를 만들법한데, 그냥 흘러보내버립니다. 적어도 타키가 오쿠데라보다 미츠하를 더 사랑하게된 이벤트가 있었다면? 하지만 신카이는 그런 전형적 각본보다는 미신적인 무스비란 설정을 가져오죠. 신선할수도 있지만, 너무 자기 멋대로 아닌가요?

    거기에 여러가지 요소를 복합적으로 판단하니 우경화흐름에서 [너의 이름은]은 벗어날수가 없었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이게 우익작품이라고 단정하진 않았습니다. 만약 이게 우익작품이라 한다면 일본제국도 막부도 아닌, 히미코여왕이 다스리던 떄로 돌아가자라는 이야기죠 뭐
  • 비블리아 2017/01/31 00:35 #

    결국 풀어나가는 방식은 전생의 인연 어쩌구저쩌구와 별 다를 바 없죠. 현생에 아무 접점도 없다- 하지만 전생에 접점이 있다- 결국 둘은 이어질 운명론... 여기서 전생을 무스비로만 바꾸면 되는 거 뿐임.
    그리고 우경화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지만 우익작품이라 단정하진 않는다니 ㅋㅋ 무슨 말장난도 정도껏 해야지.
    그리고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과거의 인물이 구원받는 이야기 역시 흔하디 흔한 스토리 중 하나임. 이것들 전부 우익딱지 붙이거?
  • 무스비 2017/01/30 12:03 # 삭제 답글

    얄팍한 지식과 그럴듯한 단어로 만든, 현학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글이군요. 해석은 자유라지만 곡해도 이 정도면 작품의 재창조입니다.
  • ㅇㅇ 2017/01/30 12:04 # 삭제

    닉부터 씹뜨억냄새나네ㅋㅋㅋ 오타쿠새끼야 너네말은 들을 가치없어
  • ㅋㅋ 2017/01/30 12:51 # 삭제

    리플단 너새끼도 이글 싼 새끼도 다 오타쿠같은데 무슨 개소리임 ㅋㅋㅋㅋㅋ
  • 무스비 2017/01/30 12:06 # 삭제 답글

    로그인하세요. 별 댓글도 없는 글에 실시간 반응할 정도면 관심이 많이 필요하신가본데. 본인 글에 왜 로그인도 못 하시나요?
  • 코론 2017/01/30 12:31 # 답글

    국가주의ㅋㅋㅋㅋ 우경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ㅋㅋ 2017/01/30 12:51 # 삭제 답글

    비판이 아니라 망상인듯

    일상생활 가능하심?
  • 2017/01/30 13:05 #


  • 돼지물고기 2017/01/30 14:31 # 답글

    이 논리대로면요. 공조는 북한 정권미화랑 남한 형사의 농담성 대사중에 나오는 은연중의 북한체제에 대한 동경으로 남한 전체의 체제를 부정한다는 개소리도 가능합니다.

    뭐 그딴 망상 제외하고 보면 공조 자체는 설에 부족했던 액션영화를 남북 공조수사라는 프레임에 씌우긴 했지만 괜찮은 거구요.

    그리고 뭐 플롯이 허술하다느니 시공을 초월한 사랑 치고는 내용이 부실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겠죠.


    근데 우경화요?ㅋㅋㅋㅋㅋㅋㅋㅋ
    전통을 중시하는 국가주의의 상징인 미야미즈 신사는 어떻게 되었나요 결국. 깔쌈하게 슛!
    우경화 얘기할려면 차라리 헠헠 느그애비 무쓸모 자위대 불러서 대피시켜야지 이정도 나왔으면 인정해드림. 아니면 뭔가요. 운석 추적 안된대여 우리 방공능력 증강시킵시다 이런건가요?

    저는 오히려 페미니스트가 활개치고 다니면서 아수라 상남자들의 시사회! 이런것까지 시비털고 넘어지는 꼬라지에서 우리가 200억엔 넘게 번 저런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데 회의적이네요.
    하긴 페미나치 꼬라지 보고서 정청x자성 이딴거나 쳐 만드는 시대나 오지나 않으면 다행이지.
  • 코로로 2017/01/30 15:31 # 답글

    다른건 모르겠는데, 세카이계 작가는 역사 의식을 다루지 않음.

    어째서냐면, 그런 소재를 피하가기 위해 만드는게 세카이계 이기 때문임.

    세카이계는 일반적으로 작가가 하나부터 열까지 작위적인 세계를 만들어서,

    그 작위적인 세계의 운명을 등장 인물, 극중 캐릭터에게 던지는 스타일인데,

    왜 이런 작위적인 작품을 만드냐면,

    실제하는 현실을 모사해서 작품을 만들기 싫어서 그러는 거임.

    또, 일본의 대중은 그런 이야기를 오랫동안 터부시 해왔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함.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애니메이션은 근경, 원경은 있어도 중경은 없다는 말이 있음.

    근경, 아주 가까운 주변 인물간의 세계를 그리는 방식. 예를들어 일상물.

    원경, 나와 관계 없는 아주 먼 상황을 그리는 방식. 예를 들어 세카이계.

    나를 둘러싼 정치 상황이나 사회 문제, 역사의식, 국가관과 같은 중경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선 그리지도 않고, 그려도 성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역사 의식을 읽어내려는 시도는 그 시도 자체가 무의미함.
  • 2017/01/30 19:29 #

    [너의 이름은] 보면서 일본의 꽃꽂이를 보는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뭐 말씀하신 지적 모두 받아들입니다.

    다만 이 작품과 일반적 세카이계나 루프물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남자주인공이 여자만 구하는게 아닌, 공동체 전체를 구원해낸다는 점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구하려는 여성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하는 존재인 경우가 많긴합니다.

    그리고 [너의 이름은]에서 세계와 대결해서 완전하게 승리합니다. 이것도 문제죠. 보통 세계와 여자사이의 딜레마가 주어지고 거기서 파국적 결말을 맞는 경우가 있고 혹은 상처만 남은 승리가 있고, 아니면 우로부치의 마마마 같은 엔딩도 있겠는데

    일반적 세카이계에선 사회가 날아가버리고 너와나만이 남지만, 이 작품은 공동체의 구원과 승리를 다루는겁니다. 그걸 약간 예민하게 전 반응한겁니다.
  • 2017/01/30 18:02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ㅇㅇ 2017/01/30 18:13 # 삭제 답글

    오타쿠
  • 치즈 2017/01/30 18:22 # 삭제 답글

    나 이런식으로 한다면, 지금까지 본 모든 영화를 비판할 수 있을것 같아
  • 치즈 2017/01/30 18:29 # 삭제 답글

    감독이 무리한 설정을 해도 결국 이상적인 상황과 인물관게를 위해 설정하는거다. 이런식으로 무리한 설정을 비반하면 모든 영화의 모순된 상황을비판할 수 있다.
  • 렛츠고우 2017/01/30 20:06 # 삭제 답글

    캬, 이제 알았네. 반지의 제왕은 세오덴 왕이 로한군 이끌고 곤도르 구원하면서 병사들 독려하는게 세계를 위해서 개인을 희생하라는거니까 전체주의 영화였네. 캬. 고건 몰랐네
  • 동굴아저씨 2017/01/30 22:51 # 답글

    3번까진 괜찮았고 4번부턴 무리수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 철갑군 2017/01/31 10:47 # 답글

    이젠 별 미친소리가 나오는거 봐선 저 애니가 참 유명힐 애니구나 합니다

    잘만들기도 했고
  • 괴인 怪人 2017/01/31 13:25 # 답글

    재밌네. 더 해봐 (팝콘)
  • Nio 2017/01/31 19:53 # 답글

    뭐, 이건 딴소리긴 한데 개인적으로 정말 훌륭하게 보신 영화 뭐 있으신가요?
  • 2017/02/01 17:11 #

    찰리 카우프만이 각본담당한 영화들이랑 스타워즈요. 그외에도 좋아하는 작품 많아요/.
  • 서로비 2017/01/31 23:02 # 삭제 답글

    보통 이 정도로 작품을 부정하는 건... 작품을 비판하기 위해 또는 부정하기 위해 영화를 보신 게 아닐까 싶네요.
    당연히 까기 위해 보는 영화이니 작품이 제데로 눈에 들어올 리는 없지요.
    물론 영화에서 생략된 미야미즈 가문 이야기는 조금 아쉽긴 하지만 외전소설에 잘 나와 있었네요.
    보다 보면 사실 우경화라고 비난하긴 좀 무리인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체스도 여왕이 죽으면 게임 안 끝나고 왕이 죽으면 게임 끝이니 여혐! 남성적인 메탈 디자인의 노트북? 여혐! 이런 느낌이네요.
    물론 사랑 이야기는 한국 '일류' 드라마 작가들이 정말 잘 쓰긴 하지만 후기들을 보면 쟤내 둘이 왜 좋아하는지 이해 안됨! 이러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좋아하는 데 이유없다며 모태솔로 히키코모리임? 이리 시비가 걸리기도 하는 것으로 보아 부산행 등의 신파적으로 감정을 전달하려 설계된 영화가 아니라 호불호가 갈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뻔한 가족희생이라며 국내에서 많이 까인 부산행이 해외에선 가족주의라며 호평도 받지요.
    잘 만들긴 했지만 사람 따라 취향 타는 애니이고 국내에서 애니는 오덕후 히키코모리 인상이 있음에도 300만 넘긴 건 사회상이 변하고 있다 정도로 보입니다.
    아시겠지만 신카이 작품들은 취향 엄청나게 탑니다.
    ㅎㅎ 그냥 님과 잘 안 맞았다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읖까요?
  • 2017/02/01 17:05 #

    까다롭게 보는거랑 부정을 위한 비판이랑 다른거구요. 이 작품 2번보고 여러 다른 리뷰나 비평이랑 신카이 감독 전작 리뷰까지 여러부분 검토하면서 제 생각을 정리한것에 불과한겁니다.

    이 것은 하나의 의견이고 이 작품의 애호가들을 싸잡아 비난하는게 아닙니다. 단지 이 부분은 이상하고 이 부분은 주류의견과 난 다르게 본다.ㅏ 이것에 불과한겁니다.

    제 개인적 생각은 차지하고도 [너의 이름은]같이 편안하게 볼수 있는 일본 애니메가 최근 몇편이나 있습니까? 물론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이미 수많은 관객이 이 작품의 장점과 미덕에 열렬히 호응했습니다. 그 가치가 나 한사람의 의견떄문에 더러워지지 않아요
  • ㅇㅇ 2017/02/02 01:47 # 삭제 답글

    우익은 잘 모르겠는데, 나머지는 꽤 동의합니다.
    뭔가 꿈에서나 할것 같은 몽롱하고 애절한 사랑? 을 모티프로 하다보니 사랑에 빠질 직접적 계기가 부족해서 허전한걸 느꼈네요. 비슷한 영화를 많이 봤던 학습효과+ 아무리 생각해도 둘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결말이므로 아 얘네들이 사랑하게 되겠구나 라는걸 인지하지만요 납득하기에 한 20퍼 부족한 느낌.
    글고 오타쿠 문화와 너의이름은. 이 동떨어졌단 부분도 공감합니다.. 너무 특이 케이스고 오타쿠 문화는 신카이의 이런 부분을 받아들일 이유도 각오도 계기도 없어요.. 업계에서 일좀 해보니 느껴지는군요.
  • 2818 2018/01/23 11:46 # 삭제 답글

    ... 조금 이라도 조사를 해 보고 작성을 하셨다면 이러한 결론까지 유도되진 않으셨겠죠. 더구나 글 내용의 태반이 이미 밝혀지고 조사된 떡밥들을 바탕으로 여전히 답답하게 태도를 고수하면서 있으시니.. 정보력 없이 쓰는 전달 매체글은 상당히 보기에 안 좋을 뿐더러 이 글이 신랄하게 까이는 이유는 글에 태반이 맞춤법이 틀렸어요.. 맞춤법 때문에 글 전체적 신뢰성도 떨어지고, 개연성도 확연하게 떨어지네요. 타키에게 직접 감정을 품게 된 계기 부터가 미츠하의 인생사 라던지 어나더 사이드를 읽으면서 그런 이유를 찾으면 될 텐데, 무작정 갑자기 사랑한다고 표현 하셨네요. 원작 소설에서도 미츠하는 손바닥에 타키의 좋아해 라는 필체를 보고 "우린 서로 사랑하고 있다. 드디어 정확하게 깨달았다." 라고 나옵니다. 그 전까지는 갑자기 자다 울기도 하고 허전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불투명 한 감정 이었는데, 타키의 표현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이죠. 미츠하는 어릴 때 부터 아무에게도 자신의 속내를 밝히지 않고, 엄격하게 자라와서 어리광을 부릴때도, 받을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엄격히 커온 탓에 이성에 대한 관심도 없고, 자신의 사정과 감정을 공유하고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타키는 반강제로 서로 사생활과 감정을 쉽게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좋아하는 감정으로 바뀐 것입니다. 작중에서도 나오는데, "주변 사람들이 미츠하를 평하는 것과 내가 아는 미츠하의 이미지는 상당히 달랐다." 네. 말 그대로 타키에게는 반강제적으로 사생활과 감정, 즉 일기장 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감정 열람과 소통이 가능하기에, 자연스레 사랑이란 감정으로 발전하게 된 것입니다. 불투명한 감정이 서로 좋아함으로 자리잡게 되는 것이죠. 반박은 이쯤 하고, 두서없이 쓴 초서가 길었군요. 어쨌든 작품을 무조건적 으로 폄하하기 보다는, 조사하고 또 알고 적으시길 권장 드립니다. 직장 생활 하실때도 이렇게 대충 리포트 작성하시면 욕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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